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아빠의 눈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해뜨는집
작성일10-06-24 00:00 조회1,746회 댓글0건

본문



아빠의 눈물

명지가 열 다섯살때였다
명지의 가족은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경포대로 갔다. 바다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물 위를 비행하는 갈매기들의 모습이 은빛으로 출렁거렸고
바다 끝 수평선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푸른 빛으로 넘실거렸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나흘을 보내고 마음은
그대로 남겨둔채 명지네는 경포대를 떠나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폭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 사고로 명지는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날 이후로 병지는 보조다리 없이는 몇걸음도
걸을 수 없게 되었다 . 불행은 명지 하나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명지보다는 덜했지만 명지의 아빠도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명지의 아빠는 하시던 약국을
계속 경영했다. 명지는 사춘기를 보내며 죽고 싶을 정도의 열등감에
시달렸다 명지가 밥도먹지않고 책상에 옆드려 울고있을때
위안이 되어준 사람은 오직 그녀의 아빠뿐이었다
물론 그녀의 엄마도 늘 위로와 결려를 보내주었지만,
엄마가 해주는 위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때가 많았다

정신까지 절룩거리는 명지에게는 정상인인 엄마가
아무리 큰사랑으로 끌어안을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다
하지만 명지 아빠는 달랐다 누구보다도 명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떄문에 차마 말할 수 없는 명지의
아픔까지 아빠는 낱낱이알고 있었다

길을 다닐때 명지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빛이 싫어서
늘 땅만 쳐다보며 다녔다. 어느 겨울엔가는 얼어붙은
땅 위를 걷다가 미끄러져서 얼굴이 온통 까진 채 아빠의
약국으로 간적도 있었다
명지는 아빠의 품에 안겨서 한없이울었다

"아빠,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는게 너무 싫어" 명지야,아빠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 같은거야
그걸 알고 나서 아빠는 오히려 그들의 눈빛이 고맙기까지 한걸
명지 아빠는 조심스럽게 명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약을 발라주었다

그의 붉은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아빠는 우리 명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아빠 말 좀 잘들어 봐 물론 아빠나 명지가
어쩌면 그들보다더 불행할지도 몰라.그렇지만 우리의 불행을 통해서
사람들이 위안을 받을지고 모르잖아.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거구...
명지야,조금만 더 견뎌,아빠가 네 곁에 있잖아

그 후로도 명지 아빠는 명지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 언제나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빠의 사랑으로 명지는 무사히 사춘기를 넘기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입학식 날 그녀의 아빠는 명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명지 역시 자신의 아빠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입학식장에서 아빠는  두 개의 보조다리에 몸을 기댄 채
가슴 가득 한다발의 꽃을 안고 있었다

입학식을 끝내고 나올때 그들의 눈앞에서 아주 긴박한 상황이 벌여졌다
차가 다니는 도로 쪽으로 한 어린 꼬마가 뛰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걸어가던 명지의 아빠는 그 아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명지의 눈앞엔 믿을 수 없는 일이 있어나고 있었다

명지 아빠는 보조다리도 없이 아이를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명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아빠가 그 아이를 안고
인도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빠?

명지는 너무 놀라 소리쳤지만 아빠는 못 들은 척 보조다리를
양 팔에 끼고는 서둘러 가벼렸다
엄마? 엄마도 봤지? 아빠 걷는거...
하지만 명지 엄마의 얼굴은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명지야 놀라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
언젠가는 너도 알게 외리라 생각했어.
아빠는 사실 보조다리가 필요 없는 정상인이야
그때 아빠는 팔만 다치셨어.
그런데 사 년 동안 보조다리를 짚고 다니신거야
너 혼자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고...
성한 몸으로는 누구도 아픈 너를 위로할 수 없다고 말야

왜 그랬어? 왜, 아빠까지...
명지는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지마 그렇게라도 하지않았으면 아빠는 견디지 못하셨을거야
불편한 몸으로 살아오시며 너를 위로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는데...
오늘은 그 어린것이 교통사고로 너처럼 될까봐서..

멀리 보이는 명지의 아빠는 여전히 보조다리에
몸을 의지한 채 빠른 걸음으로걸어가고 있었다
그를 보고 있는 명지의 분홍색 파카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흘려내렸다

명지가 방황할 때마다 그녀의 아빠는 늘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코 하나의 의미로만 존재하지 않는 거야
슬픔도 그리고 기쁨까지고...
힘겨워도 견디고 또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슬픔도 아름다운 노래가 되거든...

마음이 아픈 날이면 명지는 늘 아빠 품에 안겨서울었다
그때 마다 소리내어 운것은 명지였지만 눈물은
명지의 아빠 가슴속으로 더 많이 흘러내렸다.

-이철환의 연탄길 중에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